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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5년 묵은 FS700을 선택했는가? : 카메라 제조사들이여, 노오력하라

2년 전인 2016년 1월, 처음으로 사이트 콘텐츠를 기획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던 시절은 아직도 기억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시작해 보고 싶다는 충동적인 마음과 그간 수많은 콘텐츠를 기획했던 결과물을 합쳐 2016년 3월 사이트를 오픈했을 당시, 내 손에는 노트북과 지인에게서 구입한 갤럭시 S7만이 들려 있었다.

하나 놀라운 것은, 보다 제대로 된 카메라를 갖추게 된 비교적 최근까지도 나는 이 스마트폰의 뒷부분에 달려 있는 좁쌀만한 센서와, 역시 귀리 낟알만한 렌즈로 이뤄진 카메라를 애용해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콘텐츠를 제작하는 용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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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많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스마트폰을 애용한다. 물론 휴대성 면에서 워낙 압도적인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휴대성만이 전부는 아니다. 나 역시 그저 가볍고 항상 휴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DSLR을 목에 걸고 있는 상태에서도 스마트폰을 꺼내들 때가 있었다. 영상을 촬영해야 했고, 그 때 내가 의도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DSLR이 아니라 스마트폰뿐이었다.

DSLR이 더 큰 렌즈를 갖고 있고, 더 큰 이미지 센서를 갖고 있고, 더 넓은 다이나믹 레인지와 더 자유로운 심도 표현이 가능함에도, 나는 스마트폰을 써야만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스마트폰만이 내가 원하는 포맷으로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카메라 업계의 현실이다. 기껏 해봐야 몇십만원밖에 안 되는 구형 스마트폰이, 300만원대 후반의 하이엔드 캐논 DSLR과 동등한 포맷으로, 슬로우모션같은 일부 분야에서는 더 앞서는 포맷으로 촬영할 수 있다. 기껏해야 100만원을 조금 넘는 갤럭시 노트 8같은 스마트폰을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압도하려면, 300만원대의 고급 소니 미러리스는 모셔와야 한다. 여기에 렌즈값은 별도.

물론 스마트폰과 전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영상을 대형 TV나 편집/모니터링용 디스플레이에 띄워 비교하면 그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같은 반열에 두는 것조차 창피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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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이런 장점들이 빛을 발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인간의 생활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방법으로 제작된 콘텐츠에, 그 콘텐츠의 가치를 알 수 있는 플랫폼에 눈길을 주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2018년의 인간들은 영화나 TV를 보는 시간보다 출퇴근 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트위치같은 사용자 제작 콘텐츠(User-Created Contents, UCC)를 보는 시간이 더 길다. 신문을 구독하고 논문을 탐독하기보다는 관련 분야에 명성이 높은 블로그를 검색해서 찾아볼 때가 많다. 그것이 더 짧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지식을 가지는 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깊이나 정확도 면에서는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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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년 전부터 이러한 움직임은 현실로 굳어졌다.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이미 대부분의 용도에서 스마트폰은 성별과 연령대에 관계없이 지배적인 플랫폼이 되었다. 현 시점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저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바뀐 것은 생활 방식뿐만이 아니다. 인간이 시선을 두는 프레임이 신문과 영화관에서, TV와 PC 모니터로 옮겨갔고,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옮겨가고 있다. 프레임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 프레임 속에서는, 수십만원짜리 스마트폰으로 찍은 콘텐츠와 수백만원짜리 ENG 카메라로 찍은 콘텐츠의 차이가 프레임의 크기만큼이나 줄어든다.

게다가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인 후보정을 통해 인위적인 심도 표현과 노이즈 제거를 수행하게 되면 이 차이마저도 또 한 번 줄어들게 된다. 이제는 AI를 활용한 후보정까지 나오는 판국이니, 이 차이 또한 다시 한 번 더 줄어들리라.

더 작은 프레임에서, 덜 전문적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콘텐츠 제작의 헤게모니가 바뀌었다. 큰 프레임을 위한 콘텐츠 제작, 전문적인 콘텐츠 제작을 위한 장비를 만들어 팔던 기존 카메라 제조사들에게는 날벼락같은 일이다.

이러한 추세를 기존 카메라 제조사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프레임의 크기를 다시 잡아늘리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다시 전문적으로 제작된 콘텐츠에 시선을 두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태블릿PC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패블릿(Phablet, Phone + Tablet의 합성어로 대형 화면을 갖춘 스마트폰을 뜻함)이 득세하게 되면서 절반의 성공으로 그쳤고, 후자는 어떤 방법으로 시도해야 하는 건지도 알기 어렵다.

이 경우, 스마트폰과 같은 엔트리-레벨의 콘텐츠 생산 도구와 경쟁하려면 기존 프레임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한계가 생기게 된다. 이를 극복하려면 스마트폰 따위로는 촬영이 애초에 불가능한, 그러면서도 동시에 스마트폰 크기의 프레임에서도 구현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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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카메라 시장을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HDR이다. 또한 고속촬영이다. 주요 카메라 제조사들이 HLG 촬영 기능을 속속 하이엔드 카메라에 탑재하고 있으며, 얼마 전 발표된 Panasonic의 GH5s는 현존 미러리스 중 가장 우수한 4K 60fps, 2K 240fps 포맷의 촬영을 지원한다. 이 정도면 분명히 현세대 스마트폰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다. 더 나은 빛의 표현, 더 나은 시간의 표현은 분명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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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메라 제조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이 순간에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차이를 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 The Verge에 의하면, 2018년에 나올 스냅드래곤 845 프로세서에서는 4K HDR 60fps 촬영, FHD 240fps을 지원할 것이라고 한다. 조금만 참으면 스마트폰으로도 유사한 포맷으로 촬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GH5s의 가격은 미국 기준으로 $2499에 이른다.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2.5배에 이르는 가격이다. 그 어마어마한 가격 차이를 감수하고 GH5s를 사야만 할까? 독자가 전문적인 무언가에 가치를 두는 프로덕션 관계자라면 모를까, 예산이 항상 빠듯하고 그날의 콘텐츠를 고민하는 것도 바쁜 1인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언감생심일 확률이 높다.

카메라 제조사들은 판형이 깡패라는 말에 안주해서는 마이너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미 센서 크기가 스마트폰의 2~3배에 달하는 컴팩트 카메라 시장은 과거에 비해 크게 쪼그라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상태로 더 진행되면 APS나 Super 35, 풀프레임 카메라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좀 더 노오력해서, 새로운 기능을 담고, 근본적인 부분에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제품을 만들도록 스피드를 낼 필요가 있다. 노오력으로 안된다면 노오오오오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격차를 벌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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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uitBoard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틀 전 FS700RH가 도착했다. 5년 전 출시된 방송/영화용 카메라로, 비디오 카메라를 공부하기엔 이런 역전의 용사가 제격이다.

사실 조금 무리하면 1000만원짜리 FS7도 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추어이기에 지금 당장 사봐야 기기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낼 수 없다고 판단한 탓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앞으로 제작할 콘텐츠에 FS7과 같은 비싼 물건을 쓴다 해도, 그 가격에 걸맞는 차이를 스마트폰 크기의 디스플레이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가에 대해 결국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카메라 제조사들은 이런 내 생각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카메라 시장을 스마트폰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보자, CircuitBoard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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